• 최종편집 2024-12-01(화)

14세 무일푼 중퇴자, ‘52조원’ 아시아 최고 거부됐다…비결은?

홍콩 청쿵그룹 회장 리카싱, 열정과 생각, 지식공부로 ‘시대 통찰’ 승승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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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4.11.20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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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청쿵그룹 회장 리카싱은 한때 아시아 최고 부자 1위였다. 그의 재산 ‘52조원’은 어마어마한 돈이다.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그가 ‘무한의 부’를 축적한 비결은 “나는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꿈을 창조하고 이를 현실화한 것이다. <사진=동저우왕>

 

[세계미래신문=장화평 기자] 2024년 세계 최고 부자는 미국의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 회장 일론 머스크다. 그렇다면 아시아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아시아 최고 거부는 인도의 최대 재벌 아다니 그룹 회장 가우탐 아다니다. 그러나 수년 전 아시아 최대 부자는 홍콩의 청쿵그룹 회장 리카싱(李嘉誠)이었다. 그의 부의 비밀을 밝힌 책이 최근 출간되었다. 바로 경제전문 작가 왕징이 쓴 <무한의 부>.

 

저자 왕징은 오랜 시간 리카싱의 비즈니스 철학과 성공 전략을 연구한 끝에 <무한의 부>를 집필했다.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리카싱의 어린 시절부터 글로벌 기업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긴 여정을 자세히 분석했다. 이 책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를 넘어 리카싱의 부의 원칙을 종합적이고 깊이 있게 전달하는 최적의 성공 안내서다.

 

리카싱은 12세에 전쟁 난민이 되어 홍콩으로 이주했으나 14세에 아버지가 결핵으로 사망하자 학교를 그만두었다. 졸지에 어린 가장이 되어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찻집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뒤 시계회사, 철물공장 직원을 거쳐 청쿵 플라스틱 기업을 창업했다. 현재는 전 세계 54개국에 500여개 계열사, 25만명의 직원을 거느린 다국적 사업 제국을 이끌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기업의 시가총액은 52조원, 이는 서울시 1년 예산과 맞먹는 액수다.

 

사실 ‘52조원은 어마어마한 돈이다. 상상하기 힘든 숫자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같은 사람과 너무 거리가 먼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리카싱은 금수저 출신이 아니다. 전쟁과 질병의 고통을 겪고 14세에 무일푼의 가장이 되어 가족의 생존과 생계를 위해 밑바닥에서 시작한 그의 성공담은 다르다.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꿈을 꾸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리카싱의 성공창조는 이에 대해 커다란 영감과 지혜를 줄 것이다.

 

시련: 가난과 실패를 성공의 힘으로 만들다

 

리카싱은 19287월 중국 광둥성에서 2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교원 출신으로 가난했다. 중일전쟁 때 가족이 전쟁을 피해 홍콩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결핵으로 어머니와 형제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다. 리카싱은 불과 14세의 나이에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중퇴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어렵게 잡은 첫 일자리는 찻집이었다.

 

리카싱은 찻집에서 서빙과 청소 등을 하며 한동안 신세를 한탄했다. “, 나는 이런 운명을 갖고 태어났을까?” “, 나에게만 이렇게 가혹한 시련이 닥치는 것일까?” 그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질문하고 강하게 분노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분노나 좌절이 자신의 인생을 더 망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분노에너지를 성공에너지로 바꿔야겠다고 결심했다.

 

즉 리카싱은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삶을 결단하고 자신의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나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닥친 시련을 반드시 이겨내겠다고 결단했다. “내가 시련의 벽을 넘지 못하면 나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벽과 한계를 넘기 위해 배우고 익혀야 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관찰, 분석, 추론과 질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도전하고 창조하자고 결심했다.

 

이러한 결심이 서자 그의 찻집 생활은 단순하지 않았다. 차를 서빙하며 오고 가는 수많은 고객들을 관찰하고 특성을 면밀히 분석했다. 그가 손님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자 더 많은 손님들이 북적였다. 그러나 리카싱은 단조로움이 반복되는 찻집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1년여만에 찻집을 그만두었다.

 

리카싱은 외삼촌이 운영하는 시계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처음에는 청소와 잡일을 했다. 그러나 그는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으로 불탔다. 리카싱은 안락함은 성장의 적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들보다 1시간이라도 더 일하자! 남들보다 1시간이라도 더 생각하자고 자신을 다그쳤다. 그 결과 6개월만에 시계조립 전 과정을 모두 익혔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시계 장인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17세의 리카싱은 또 다른 도전에 나섰다. 그는 철물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기존의 철물회사들은 철물점에 납품하는 것이 전부였다. 리카싱은 업체들의 난립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혁신적인 판매 방법을 궁구했다. 효율적이고 창의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성공전략을 만들어라. 새로운 루트를 창조하라. 전통을 파괴하고 혁신하라고 자신에게 주문했다.

 

리카싱은 차별화한 카달로그와 제안서를 들고 철물점이 아닌 백화점으로 갔다.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차별화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기 위해 온몸으로 뛰었다. 무수한 도전 끝에 어느 날 우연히 백화점 사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어떻게 했을까? 리카싱은 자신에게 필요한 상대를 찾아가 필요한 정보를 주고 제안했다. 그는 타사 제품을 비난하지 않고, 합리적인 선택을 제안하며 더 나은 대안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철물회사도 크게 성장했다.

 

철물회사에 근무하던 중 플라스틱 제품을 발견했다. 리카싱이 마주한 플라스틱 제품은 금이나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그는 순간 세상은 매 순간 바뀐다. 산업도 기존의 것들은 쇠퇴하고 새로운 것들로 대체된다고 여겼다. “이제 세상은 철이 아닌 플라스틱이 지배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플라스틱 공장에 취직하여 죽을 힘을 다해 일을 배웠다. 그는 하루에 16시간씩 일을 했다. 2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과장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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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청쿵그룹 빌딩의 웅장한 모습이다. 청쿵그룹은 14세 무일푼 중퇴자 출신 리카싱 회장이 창립한 기업이다. 꿈은 모든 가능성을 현실로 창조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사진=청쿵그룹>

 

◇ 성장: 남들보다 더 일하고 더 생각하다

 

그러나 리카싱은 직원으로 평범하게 사는 삶을 거부했다. 그는 나는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억만장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22세 때 첫 창업에 나섰다. 그는 1950년 종자돈 7000달러를 들여 청쿵(長江)실업이라는 플라스틱 제조업체를 설립했다. 그는 먼저 정신적으로 억만장자가 되었다. 리카싱은 자신의 꿈을 담아 회사 이름을 청쿵(長江: 장강, 양쯔강의 광동어 발음)’이라고 작명했다.

 

청쿵은 중국에서 가장 길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세 번째로 긴 강이다. 청쿵은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거대한 강이 되고 수많은 지류가 하나로 합쳐져 결국 대양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는 청쿵처럼 청쿵 플라스틱 공장 역시 작은 공장에서 시작해 거대한 부의 바다를 이루겠다는 꿈과 결단을 담았다. 그는 함께한 창립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회사는 홍콩 최고가 될 것입니다. 또 계속 확장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와 함께 부자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창업 초기에 수주 폭증으로 잘 나갔다. 직원을 확충하고 공장을 풀가동했다. 그러나 첫 위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찾아왔다. 갑작스러운 기계 고장과 미숙한 직원의 실수가 겹치면서 생산된 제품들에서 큰 결함이 발생했다. 고객들은 제품 인수를 거부했다. 심지어 손실보상까지 요구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삶이 눈앞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에 몰렸다. 리카싱은 이때의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 불안감과 공포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리카싱은 평정심을 잃고 직원들에게 화내고 야단을 쳤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이것은 아주 잘못된 해결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직원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우리는 한배를 탔다. 심기일전하여 잘 이겨내자고 호소했다. 그리고 은행과 고객들을 찾아가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이렇게 위기를 극복했다.

 

리카싱은 진심 어린 사과와 설명으로 고객에게 다시 신뢰를 얻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는 최고의 삶을 원한다면 최고의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어려운 때가 가장 성공하기 쉬운 때다. 그는 다시 모든 힘을 합쳐 더 큰 세상을 향해 도전에 나섰다. 더 큰 글로벌 시장을 개척했다. 리카싱의 청쿵은 타고난 능력과 성실함으로 당시 홍콩 내 300여개의 플라스틱 공장 중에서도 탄탄한 회사로 자리 잡았다.

 

리카싱의 승승장구는 배움에 있다. 그는 평소에도 다양한 책과 전문서적을 즐겨 읽었다. 1957년 어느 날 플라스틱 전문잡지를 읽고 있었다. 기사에서 한 이탈리아 플라스틱 회사가 조화를 만들어 유럽과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다는 글을 접해 무릎을 딱 쳤다. “바로 이거다!” 중국은 축제도 많고 꽃을 좋아했지만, 당시 홍콩의 습하고 더운 날씨로 인해 생화는 가격도 비싸고 공급이 원활치 못했다. 그래서 리카싱은 생화처럼 똑같이 생긴 조화를 만들어 팔면 성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빅히트를 쳐서 대성공을 이루었다.

 

리카싱은 1958년에 부동산 분야에도 진출했다. 1963년 결혼을 하였고 당시 지은 가옥에서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청쿵그룹은 1972년 홍콩증시에 상장되면서 그 해에만 회사 가치가 65배 이상 증가하였다. 이후 운수회사 허치슨 왐포아를 비롯하여 1980년대부터 여러 운수기업을 인수하여 항만산업에도 진출하였다. 또한 홍콩전력을 인수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주요 투자처였던 중국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덕분에 크게 성장하여 글로벌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홍콩 사람들의 삶에서 청쿵그룹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대부분은 청쿵그룹이 지은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그들이 건설한 도로와 교량, 지하철역을 통해 출퇴근한다. 그리고 청쿵그룹이 서비스하는 전화나 전기, 인터넷을 이용하고 청쿵그룹이 만든 매장에서 식사를 하거나 필요한 물품을 산다. 이처럼 홍콩인들에게 청쿵그룹은 의식주의 최대 제공자다.

 

청쿵그룹의 홍콩 주식시장에서의 비중이 거의 25%대를 차지한다. 홍콩인들은 오죽하면 우리가 1달러를 쓰면 이 중에서 5센트는 청쿵그룹 리카싱 회장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는 말까지 한다. 2018년 장남인 빅터 리 부회장을 후계자로 결정하고 은퇴했다. 2019년 중국의 코로나 유행에 대한 지원금 차원에서 1억 홍콩 달러(대한민국 원화로 약 153억 원)를 기부하였다.

 

◇ 평가: 결단하라, 선택하라, 도전하라, 창조하라!

 

리카싱이 홍콩과 중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청렴한 삶때문이다. 리카싱은 항상 낮은 자세로 부하 직원들을 한 사람씩 보살폈다. 그는 식사할 때 주요 측근들만 이끌고 최고급 식당에 가서 밥을 먹지 않는다. 리카싱은 직급에 상관없이 일 잘하고 믿을만한 사람들과 회사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같이 하는 것을 즐긴다.

 

리카싱은 회사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면 반드시 직원들과 똑같이 줄을 선다. 절대 특권과 반칙, 편법이 없다. 그는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 적극적인 기부와 교육 및 의료 자선 활동 등으로 홍콩인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리카싱은 지금도 10년이 훨씬 지난 양복을 아직도 즐겨 입는다. 또한 손목에는 3만원짜리 싸구려 시계를 차고 있다

 

리카싱의 리더십을 혹자는 한 손에는 <논어>, 다른 손에는 주판을 든 거상또는 재신(財神)’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의 리더십의 본질은 포용과 신뢰다. 리카싱은 포용과 신뢰를 바탕으로 통합의 힘을 발휘한다. 그는 비록 자신에게 불편하고 불리한 여건이 조성되더라도 부하직원이나 조직원에게 절대로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또한 그는 친분을 핑계로 사람을 쓰기 시작하면 그 회사는 망한다고 말한다.

 

리카싱은 독일 태생의 천재 물리학자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존경한다. 그는 일반상대성이론을 구상할 당시 남긴 아인슈타인의 자필 원고를 약 155억원에 낙찰 받기도 했다. 리카싱은 중국의 홍콩반환 20주년을 맞은 지난 2017년 한 인터뷰에서 간절하게 이루고 싶은 것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거대한 꿈을 가진 사람은 단순히 사실을 늘어놓는 사람보다 강하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해 젊은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리카싱은 가는 곳마다 배움의 장으로 만들었다. 모든 일터, 모든 책, 모든 공간을 지적 성공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는 불의한 사업은 아무리 수익이 커도 응하지 않았다. 신용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고, 무한에 가까운 부를 얻게 되었다. 그의 어록을 몇 가지 살펴본다. 멀리 보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미래의 세계는 당신이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지식이 없으면 사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나는 언제나 최고의 부자가 된 나 자신을 상상했다. 비결이라면 그것뿐이다.” 의롭지 못한 채 부를 누림은 뜬구름과 같다.”

 

추신: ‘더 좋은 세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아름다운 동행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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