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누구 묘비명일까?
[장영권의 ‘위자’](7) 자기혁명의 전제: ‘나의 묘비명’을 미리 써 놓아라.
■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누구 묘비명일까?
[장영권의 ‘위자’](7) 자기혁명의 전제: ‘나의 묘비명’을 미리 써 놓아라.
[장영권의 ‘위대한 자기혁명’(7)]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누구의 묘비명일까? 장영권의 저서 <위대한 자기혁명>의 책 내용을 연재물로 소개한다. 이번에는 제1부 ‘자기혁명의 전제-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다’ 중 제2장 “나의 묘비명을 미리 써 놓아라”의 세 번째 편이다. 소제목은 ‘유명 인사들의 묘비명’이다.
사람들은 태어났다가 죽으면서 단 하나의 묘비명을 남긴다. 이 묘비명은 그의 삶 전체를 요약, 압축한 것이다. 그 속에 그의 인생철학, 즉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만의 대답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 묘비에 무엇을 적어야 할까? 유명인들의 묘비명을 보고 내 묘비명을 미리 작성하고 살아간다면 더 성공적인 인생이 될 것이다. <편집자>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누구의 묘비명일까?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극작가 겸 소설가, 비평가인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1856년~1950년)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버나드 쇼는 극작가답게 죽음마저도 희극화했다. 그러나 그 희극적 표현 속에는 삶의 진지한 자세가 배어 있다.
버나드 쇼는 소설가로서는 실패했다. 그는 자기혁명을 통해 사회주의자, 연설가, 논객, 극작가로 새로운 자아를 찾았다. 버나드 쇼는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빅토리아 시대의 무대를 생동감 있게 변화시키는 희곡을 쓰면서 극작가로 성공했다. 특히 생명철학에 기초한 작품 <인간과 초인>으로 세계적인 극작가로 발돋움했으며, 19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17세기 이후 영국의 중요한 극작가로서 당시 뛰어난 희극작가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버나드 쇼는 성공의 순간에 만족하지 않았다. 94세까지 살면서 유머와 풍자, 위트를 잊지 않았으며, 사상가로서 자기 위치를 더욱 견고히 했다. 걸작으로 꼽히는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인간과 초인>, <피그말리온>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이런 위대한 극작가가 남긴 묘비명은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풍자적 유언’을 통해 “죽는 그날까지 열정적으로 살아라”라고 강력한 삶의 가르침을 주고 있다.
“오늘 내가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바뀐다.” 누구의 묘비명일까? 자못 거창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B.C. 384년~B.C. 322년)의 묘비명이다. 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2천여 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상가다. 형이상학, 논리학, 정치철학, 윤리학, 자연철학, 과학, 생물학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통달하고 그것들의 기초를 마련한 세계 철학사의 거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1998년 저명한 현대철학자들이 벌인 ‘서구 철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를 뽑는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스탠퍼드 철학백과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다.
“오늘이라는 날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라.” 13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예언자, 신앙인으로서, 전 인류에게 불멸의 서사시 <신곡>을 남긴 단테(Durante degli Alighieri:1265년 3월~1321년 9월 14일)의 묘비명이다. 그는 중세의 정신을 종합하여 문예부흥의 선구자가 되어 인류문화가 지향할 목표를 제시하였다. 주요 작품은 <신생>, <농경시>, <향연> 등이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정쟁에 가담했다가 추방되었다. 1303년 38세 때 “인류 구제의 길을 가르치려는 사람은 먼저 지옥에 가서 인간이 범한 죄의 실체와 이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보아야 한다”고 스스로 결심하고 유랑의 길을 떠났다. 그는 이 과정에서 고난과 시련을 겪으며 인간사회의 모습을 샅샅이 관찰하여 그 가운데서 멸망하는 것과 영생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단테는 유랑시인이 되어 이탈리아 각지를 떠돌아다니며 <신곡>의 ‘지옥편’은 1304년∼1308년에, ‘연옥편’은 1308년∼1313년에, ‘천국편’은 그의 생애의 마지막 7년 동안에 완성하였다. 단테는 대작 <신곡>의 완성 후 고향인 피렌체의 시민들이 자신을 계관시인(桂冠詩人)으로 맞이해 줄 것을 희망하였다. 그러나, 1321년 9월 라벤나의 영주 폴렌타의 외교사절로 베네치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함으로써 그의 꿈이 덧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폴렌타는 단테의 죽음에 대하여 최고의 애도를 표하고, 라벤나의 땅에 묻었다. 피렌체는 내전이 끝나고 단테의 유골을 되찾으려 했지만 라벤나는 번번이 거절했다. 결국 교황의 결정으로 피렌체로 유골을 넘겨줄 것을 명령하였지만 라벤나는 유골을 빼돌리고 넘겨주지 않았다. 은닉되어 있던 유골이 1865년 발견되어 라벤나의 작은 교회에 안치되었다.
살아서 타향을 방랑했던 단테는 죽어서도 오랜 유랑을 했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오늘날 단테의 무덤은 라벤나에 있지만 무덤을 밝히는 초의 비용은 피렌체가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유골의 안식처를 두도 오랜 기간 다투던 두 도시가 이 정도에서 타협한 셈이다. 단테가 다시 태어나 이것을 알게 된다면 무어라고 말할까?
“일어나지 못해서 미안하오.” <노인과 바다>(1952년)로 퓰리처상,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Miller Hemingway:1899년 7월 21일~1961년 7월 2일)의 묘비명이다. 그는 대표작 <노인과 바다>를 비롯하여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의 세계적 명작을 남겼다. 문명의 세계를 속임수로 보고, 인간의 비극적인 모습을 간결한 문체로 묘사한 20세기의 대표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953년 아프리카 여행을 하던 헤밍웨이는 두 번이나 비행기 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다. 이로 인해 헤밍웨이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7년 간 암보스 문도스 호텔(Hotel de Ambos Mundos)에 기거하여 집필하였고 저녁이면 엘 플로리디타 바에서 칵테일을 즐기며 현지인들과 담소를 즐겼다. 그러나 쿠바혁명 이후 1960년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그 후 1961년 7월 갑자기 엽총사고로 죽었다. 자살로 추정된다.
이밖에 많은 사람들이 묘비명을 남겼다. 독일의 낭만주의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인 장 파울(Jean Paul:1763년 3월 21일~1825년 11월 14일)은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이는 그것을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이는 열심히 읽는다. 인생은 단 한 번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미국의 천재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1847년 2월 11일~1931년 10월 18일)은 “상상력, 큰 희망, 굳은 의지는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 것이다”라는 묘비명을 남겼다. 미국의 낙농산업의 개척자 게일 보든(Gail Bordne:1801년~1874년)의 묘비명에는 “나는 시도하다 실패했다. 그러나 다시 또 다시 시도해서 성공했다”라고 적혀 있다.
유명한 <명상록>을 남긴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Severus Antoninus:188년 4월 4일~217년 4월 8일)는 “전력을 다하여 자신에게 충실하고 올바른 길로 나가라. 참으로 내 생각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라는 아주 의미심장한 묘비명을 남겼다.
‘걸레스님’으로 알려진 한국의 승려화가 중광(重光:1934년~2002년 3월 9일)은 “괜히 왔다 간다”라는 걸작의 묘비명으로 유명하다. 중광은 ‘미치광이 중’을 자처하며 파격으로 일관하며 살았다. 그리고 한국문단의 마지막 귀인 천상병(千祥炳: 1930년 1월 29일~1993년 4월 28일)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시적인 묘비명을 남겼다.
천상병 시인은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는 등 누구보다도 비참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묘비명에서 만큼은 놀라운 관용과 초연함으로 “삶은 아름다웠다”고 표현했다. 더구나 가난과 고독, 고통, 질병으로 얼룩진 삶도 “아름다운 소풍”이라고 노래했다. 삶이 고통이라면 죽음은 해탈인가? 그의 묘비명 어디에도 삶의 고단함이나 죽음의 쓸쓸함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장영권 대표기자는 평화의 땅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고려대에서 정치학석사, 성균관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공은 국제정치, 남북 및 동북아 관계, 평화학, 미래전략학이다. 현재 세계미래신문 대표기자로 한국미래연합 대표, 국가미래전략원 대표, 대한건국연합 대표, 녹색미래연대 대표, 세계지도자연합 공동의장, 4차산업혁명포럼과 미래예측포럼 공동대표, 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제미래학회 미래정책위원장, 한국교육연구소 부소장 등을 맡고 있다.
인류는 지금 자연환경의 악화, 과학기술의 진화, 인간의식의 변화, 국가안위의 심화 등 4대 미래변화 패러다임의 도전으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의 생존과 미래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해결과 상생공영을 위한 ‘세계국가연합’ 창설을 주창하고 있다. 저서로는 <위대한 자기혁명>, <대한민국 미래지도>, <대한민국 미래성공전략>, <지속 가능한 평화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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